김태완 한국미래교육연구원 이사장/ 전 한국교육개발원장.
김태완 한국미래교육연구원 이사장/ 전 한국교육개발원장.

낙후된 한국교육을 이해하기 위한 서론


[교육플러스] 현재 국민 10명 중 9명은 교육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할까? 학교 교육이 사회 발전에 걸맞지 않게 낙후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감 선출과정에서 전교조 교사들이 지지하는 교육감이 선출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학부모와 국민이 느끼는 분노와 자괴감에 대해 공감한다. 그 이유는 전교조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되는 나라로 부정적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를 지지하는 주사파 정치인들은 자녀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면서 반미, 반일을 외친다. 전교조 교사들의 지원으로 당선된 교육감은 학부모의 의견보다 전교조의 요구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학교 교육의 현실이다.

학부모는 낙후되고 좌편향된 학교 교육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여유가 허용하는 한 자녀가 사교육을 받도록 한다. 그러므로 학교 교육이 바뀌어 높은 사교육비 부담으로 인한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학부모의 답답한 심정이다. 젊은 부부들은 높은 사교육비 부담이 두려워 아예 자녀 갖기를 주저하고 있다.

한편 학교 교육을 마친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학교 교육의 문제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힘들었던 과거를 생각조차 하기 싫어한다.

학부모의 분노와 자괴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향후 정부가 제대로 된 교육정책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음에서 우리 교육이 왜 이렇게 잘못된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는지 복기(復碁)해 보고, 해결책을 모색해 본다.

한국교육은 지금까지 두 번 길을 잘못 들었다.

첫째는 1990년대 초반 일반행정과 분리 독립적인 지방교육자치의 길을 선택한 것이고, 둘째는 2000년대 초반에 선택한 교육서비스 시장개방 반대의 길이다.

이와 같은 잘못된 선택은 결과적으로 폐쇄적인 평등주의와 개입주의에 기반을 둔 교육제도와 정책이 지배하는 교육거버넌스 구조를 가져 왔고, 현재와 같은 낙후된 한국교육을 초래했다.

앞으로 평등주의와 개입주의에 입각한 어떤 정책을 도입해도 교육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고, 국민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부가 교육정책의 방향을 바로 잡는 힘든 과정을 거쳐 나가야 희망이 있다.

그 방향은 첫째, 국제적으로 글로벌 리더 국가의 수준에 맞게 국내 교육서비스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다. 현재 선진국이 된 한국에서 모든 분야의 시장을 개방하였지만 유독 교육과 의료서비스 시장은 개방하지 않았으며, 치열한 국제적인 경쟁이 없는 두 분야는 결과적으로 낙후될 수밖에 없다.

둘째, 국내적으로 지방 교육행정이 일반행정과 연계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일반행정과 분리 독립적인 지방 교육행정은 역설적으로 지방의 소멸과 지방 교육의 정치화를 가속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잘못된 일반행정과 분리 독립적인 지방 교육자치의 길


1948년 건국 이후 법적으로 지방자치 요건이 갖추어지고 지방의회가 구성되어 운영되었으나, 정치적인 격동기를 거치며 지방자치는 40여 년간 중단되었다. 1990년대 들어 민주화의 열기와 더불어 계속된 경제적인 호황에 힘입어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1991년 지방의회 의원 선거와 1995년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의 틀이 갖추어졌다. 동시에 지방 교육자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당시 교육계와 교육부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등을 반영하기 위해 지방 교육행정을 일반행정과 분리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미국식에 가까운 지방 교육자치를 선택했다.

미국의 경우, 지방 교육은 기본적으로 지방세의 원천인 재산세에 부가세 형태로 마련된 교육 재원을 가지고 일반행정과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방마다 재산세에 연동하여 주민이 선택한 세율에 따라 조달되는 재원으로 교육비용을 충당하기 때문에 부유한 지방은 가난한 지방의 세 배에 달하는 교육비를 쓰고 있다.

물론 미국의 주 정부가 가난한 지방에 대해 최소 교육비 보장 정책(Minimum Foundation Policy) 등으로 보전해 주고 있지만, 그래도 지방간 교육비 격차는 크게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를 하면서도 국세 위주의 재원 조달로 인해 중앙에서 각 지방의 학생 수와 학교 수 등을 고려하여 거의 같은 규모의 교육비를 나누어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지방간 교육비 격차는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50개 주마다 다른 지방 교육 거버넌스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방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의 선출방식도 서로 다르다. 크게는 주민이 선출한 주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하는 경우와 주민이 교육감을 직접 선출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교육감은 교육위원회를 구성하여 합의제 집행기관의 성격으로 지방 교육을 운영한다.

일본의 경우, 지방자치 단체장이 지방의회의 동의를 얻어 교육감을 임명한다. 일본도 교육감은 교육위원과 합의제 집행기관 방식으로 교육청을 운영한다. 이때, 학교시설 등은 단체장이 관리하고, 교육감은 학교 교육의 운영만 책임진다. 지방 교육이 일반 행・재정의 틀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1년부터 2006년까지 지방의회가 교육위원을 선출하고 교육위원이 교육감을 선출하는 간선제 방식(1991-1997), 학교운영위원회 대의원과 교원 대의원이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선출하는 간선제 방식(1998-1999), 학교운영위원회 위원 전원이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선출하는 간선제 방식(2000-2006)을 채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소수의 선거인단이 쉽게 유혹에 빠지는 소위, 선거부정 문제를 경험하였다.

개선책으로 2007년부터 현재까지 주민이 직접 교육감을 선출하는 직선제 방식으로 변화해 왔다. 교육감 직선제 시행 이후 교육위원회는 지방의회로 통합되고, 교육감은 독임제 집행기관으로서 집행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필자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한국교육개발원의 책임연구원으로서 “교육자치제연구: 교육통치체제와 재정정책을 중심으로, 1989”와 “교육자치제 종합연구, 1990” 등 2년에 걸친 두 연구보고서를 통해 분리 독립적인 지방교육체제에 대해 반대하고, 일반행정과 연계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자체 재원 조달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일반행정과 분리 독립적인 거버넌스 시스템을 갖는 것은 매우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에 발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학교 교육은 지역 주민이 가장 원하는 서비스인데, 일반행정과 분리된 체제로 운영되는 것은 주민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대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의 대세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을 존중하여 지방 교육을 운영해야 하므로 분리 독립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학교장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한국교총과 이를 지지하는 학자들과 교육부의 입장이 일반행정과 분리독립이었다. 이후 필자는 소위 교육계의 주류 세력과 계속 불편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일반행정과 분리 독립된 지방 교육은 지방의 소멸을 가속화시켰다. 교육청은 지방의 소규모 학교를 비경제적,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통폐합하였고, 학교를 잃은 지방은 바로 소멸의 길을 걸었다. 즉, 일반행정과 분리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학교의 설립과 폐교 조치에 지역 주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없기 때문에 학교는 주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문을 닫았다. 이것은 지방자치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다.

또한,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분리 독립적인 입장을 선택한 것이 역설적으로 지방 교육의 정치화를 촉진시켰다. 즉, 주민이 직접 교육감을 선출하는 과정에 정치적 중립성의 이유로 인해 정당은 개입하지 못하지만, 전교조와 같은 조직과 자금력을 가진 세력은 마음껏 선거운동을 할 수 있으므로 이들이 지원하는 후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파 이념을 가진 후보들은 단일화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좌파 이념을 가진 교육감이 선출되었다. 최근 6.1 지방선거에서 깨어난 국민에 의해 그나마 최소한의 좌우 균형을 이룬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예로부터 “성(城)을 쌓는 자는 망한다”라는 교훈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城)은 성의 안과 밖을 나누어 상호 소통과 교류를 차단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개방시대에 북한과 같이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하고 있는 사회와 국가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이는 자연계의 순환시스템을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즉, 하늘에서 내린 빗방울은 작은 시내를 거치고 강을 거쳐 바다로 들어가고, 바닷물은 다시 수증기로 증발하여 하늘로 올라가서 비로 내려오는 대기의 순환과정과 궤를 같이해야 물은 중간에 썩어서 소멸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물이 흘러내려 가는 중간에 자주적인 길을 선택하여 안온하게 고여 있는 늪으로 들어가면 썩어서 악취를 발생하고 소멸한다. 현재 국제적으로 시장개방을 하지 않고 있는 한국교육은 국내에서도 주민의 요구를 반영하여 운영되고 있는 일반행정과 분리된 안온한 늪에 빠져 조용히 썩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잘못된 교육서비스 시장개방 반대의 길


우리나라 근현대 100년의 역사는 개방의 역사로 볼 수 있다. 특별히 시장개방의 역사로 볼 수 있다.

한국은 2009년부터 국제원조 수혜국으로부터 공여국으로 발전하였으며,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였다.

시장개방의 역사를 보면, 가장 낙후한 쌀시장도 개방하였으며, 모든 상품시장과 유통시장도 개방하였다. 과학기술 분야는 당연히 개방하여 크게 발전하였으며, 문화 분야도 개방하였다. 특히, 영화인들의 반대로 인해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개방한 영화산업은 한국의 영화 수준을 세계 정상급으로 올려놓았다. 스포츠 분야도 개방하여 외국 선수를 수입하여 경쟁한 분야는 크게 발전하였고, 최근에는 법률시장까지 개방하였다.

현재 개방하지 않고 있는 분야는 교육과 의료보건 분야이며, 두 분야는 가장 낙후한 상태에 있다.

2003년 WTO에 개방양허안을 제출할 당시에 외국의 병원과 제약회사가 들어오면 국내 병원과 제약회사는 모두 망한다고 의료 분야 노조와 시민 단체가 반대하여 개방하지 못했다. 교육 분야도 고등과 성인교육 분야를 개방하겠다고 양허안을 제출했으나, 이후 실행과정에서 외국의 대학과 학교가 들어오면 국내 대학과 학교가 모두 망한다고 교육 분야 노조와 시민 단체가 반대하여 개방하지 못했다. 다만, 제주도와 인천 송도 등 특구를 지정하여 제한적으로 개방하였으나, 송도와 가까운 서울도 개방의 효과를 보지 못할 정도로 개방 효과가 미미했다.

반면, 1990년대 후반 싱가포르의 경우, 교육부가 반대하였으나 경제개발청(Economic Development Board)이 주도하여 교육 시장을 개방하였다. 개방과 함께 INSEAD 등 극소수의 세계 최고 수준의 MBA 과정이 싱가포르에 들어왔으며, 싱가포르 국내 대학의 경쟁력도 향상되어 아시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즉, 시장개방을 하면 당연히 국내 대학의 자유와 자율성을 허용하게 되고, 외국 대학과 경쟁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올라가게 되는 것을 실제 사례로 증명해 주었다.

의료시장까지 개방한 싱가포르의 의료기술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고급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세계의 환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시장개방 과정에서 망한 싱가포르 대학도 없고, 망한 병원도 없다. 오히려 이들의 국제경쟁력이 올라갔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필자는 “미국과 일본 간 대학개방 사례, 대학교육, 1994.07.01.”, “대학원 교육개방의 전망과 과제, 대학교육, 2002.11.01”, 그리고 “고등교육 시장과 성인교육 시장의 점진적 개방을 찬성하며, 대학교육, 2003.07.01” 등 “대학교육” 저널에 교육 시장개방 원고를 수차례 게재하며 시장개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정부와 교육계는 교육 시장을 개방하면 국내 대학과 학교는 정말 망한다고 생각했는지 개방을 실행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개방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놓쳐 버렸다.

2000년대 초 교육부는 물론 경제부처까지 교육을 중요한 산업의 하나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노조와 시민 단체를 설득하여 시장개방을 하려는 노력을 강력하게 보이지 않았다.

교육이 이렇게까지 낙후한 지금도 교육부와 정치권은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아니면,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생각해서 복지부동하고 있다. 답답하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불편한 진실, 왜 정부는 교육을 산업적인 마인드로 개방하지 못하는가?


이렇게 문제 덩어리인 학교 교육은 왜 개혁되지 못하는가? 과거 한때 유행하였던 ‘우골탑’이라는 말과 현재도 알게 모르게 진행되고 있는 ‘위장전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육받지 못한 농촌 부모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소를 팔아 자녀가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교육받은 도시 부모는 위장전입을 해서라도 자녀가 좋은 학교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이와 같이 부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경제행위가 바로 자녀교육임을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올인한다.

부모가 생계유지를 가능케 하는, 가장 소중한 생산 도구인 소를 팔아서라도, 또한 법을 어기면서까지 자녀교육에 올인한다면 교육은 분명히 가장 강력한 민간재(民間財)이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경제력이 되는 부모는 아예 학교 교육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사교육 기관을 더 신뢰한다. 마치 학교 교육은 수돗물과 같고, 사교육은 시판하고 있는 식수와 같이 생각한다.

사람들은 수돗물을 정제하지 않은 채 그대로 식수로 사용하지 않는다. 정수기로 정제해서 먹거나 시판하는 식수를 사서 먹는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더 좋은 식수를 먹기 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왜 교육을 공공재(公共財)라고 우기면서 사교육을 죄악시할까? 왜 언론은 스스로 사교육 사업으로 돈을 벌면서 공공재는 좋고, 민간재는 좋지 않다고 부추길까? 정부는 왜 부모가 원하는 만큼 충족시켜 주지도 못하면서 사립학교까지 정부 통제하에 꽁꽁 묶어 두려고 할까? 정부와 언론은 왜 사립학교 경영자를 잠재적인 범법자로 취급할까? 교육이 민간재라면 정부는 왜 산업적인 마인드로 문제 해결을 하려고 하지 않을까?

교육은 공공재적인 성격도 있지만, 분명히 민간재인데, 시장 개방도 하지 않고 정부와 교육청의 통제 하에 두고 대학과 학교의 자유와 자율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 특히 교육계가 교육을 산업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윤추구를 위해 교육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립학교와 사교육은 모두 이윤추구를 위해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경계심을 가지고 대한다.

서양 사회는 산업혁명을 통해 사회의 모든 부문이 개방되고 의식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반면, 한국은 서구식 산업발전의 과정은 경험하였지만, 의식의 근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즉, 우리는 교육과 의료 등은 이윤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반면, 싱가포르와 홍콩은 교육과 의료시장을 개방하여 성공하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정부의 교육 실패 원인은 교육 시장을 미개방..."시장을 개방하면 공무원의 먹이 사슬에 묶여 있는 국내 대학과 학교에도 자유와 자율을 인정하고 풀어 주어야 하기 때문"


우리나라 정부는 교육과 보건의료서비스 분야에서 실패하고 있다. 국민이 착해서 정부의 실패를 용서하고 있거나 아니면 정부의 실패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1980년 7월 30일 정부가 비상조치의 성격으로 내린 ‘과외 전면금지’ 조치가 20년 후인 2000년 4월 27일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종지부를 분명히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에 대한 정부와 교육청의 부정적인 인식은 계속되고 있다. 과연 어느 누가 정부 공무원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나?

이것은 분명히 정부 공무원의 월권이요, 권한 남용이고, 정부의 실패를 감추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의 실체는 공무원이다. 공무원은 교육부와 교육청을 운영하고 있는 실체이며, 공무원은 공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일한다. 이것이 바로 교육부와 교육청이 운영하는 대학과 학교가 실패하는 이유이다.

공교육을 좋은 것으로 포장하고, 사교육을 나쁜 것으로 매도해야 자신들의 이익이 커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대학과 학교는 공무원의 먹이 사슬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사립대학은 교육부의 각종 재정지원정책의 혜택과 평가를 잘 받기 위해 교육부의 고위 관료를 총장으로 모셔 간다. 국립대학의 사무국장과 주요 사무 보직은 교육부의 고위직이 나가고 다시 들어오는 순환문 역할을 한다. 교육청의 부교육감 자리도 교육부의 고위직이 드나드는 자리이다. 대학과 교육청이 교육부의 재정지원에 목줄이 매여 있기 때문에 교육부가 시키는 대로 한다.

교육 시장을 개방하면 국내 대학과 학교에도 자유와 자율권을 주어야 한다. 외국의 대학과 학교와 경쟁해야 하는 국내 대학과 학교를 교육부의 통제와 과잉보호 속에 묶어 두고는 교육 시장을 개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교육 시장을 개방하면 자신들이 쥐고 있는 먹이 사슬을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 먹이 사슬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는 교육부 공무원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그러므로 싱가포르에서도 교육부의 반대를 넘어서기 위해 경제개발청이 주도해서 교육 시장을 개방하였다.

교육부가 이야기하는 대학과 학교의 자유와 자율 운영은 단지 구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교육부와 교육청은 자신들이 잡고 있는 먹이 사슬을 풀어 줄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과 국회에서 풀어줘야 하는데, 이들도 개방하지 않으려는 교육부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기득 세력권으로 엮여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깨어난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온라인 교육 시장은 이미 개방되어 있는데, 오프라인 교육 시장을 묶어 두고 발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의 경험을 통해 온라인 교육이 확대되고, 메타버스와 같은 개방된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만약 오프라인 교육시장을 그대로 개방하지 않고 있으면 온라인을 통한 원격교육과 학습이 쓰나미같이 낙후한 한국교육을 덮칠 수 있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자유란 단어를 35번 사용한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말 자유와 자율, 개방이 필요한 분야는 낙후한 교육과 의료서비스 분야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우리 사회에 자유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교육과 의료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시장개방을 하지 않고 외치는 자유는 아무 의미가 없다.

국제적으로 세계시장과 소통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국내에서는 지역 주민과 연계될 수 있도록 일반행정과 소통시스템을 형성하는 것이 늪에 갇힌 한국교육을 구하고 계속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다.

일본의 지방 교육이 일반행정과 상호 연계 협력 속에 운영되고, 싱가포르가 교육서비스 시장을 개방하여 대학경쟁력이 아시아 1위이고, 국가의 국제경쟁력은 세계 1위인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상호의존과 호혜 협력하는 시대에는 자주적인 능력도 중요하지만 개방하고 상호협력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전교조에 의해 통제되는 지방 교육의 정치화를 막고, 지방 소멸 시대를 가속화시키는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 여부도 지방자치 차원에서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결정해 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과 학교의 자율적인 운영 보장을 위해 교육부와 교육청을 넘어서는 범정부 차원의 교육서비스 시장 개방정책의 실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한국 국민 중 해외 경험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외국에 나가면 좋은 대학과 학교가 많이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자녀를 해외 대학과 학교에서 교육시킨 경험을 가진 부모들도 많다. 학부모는 항상 해외의 좋은 학교를 생각하여 비교하기 때문에 국내 학교에 만족하기 어렵다.

역사를 보면, 세계의 인재들은 자유가 최대한 보장된 도시와 국가로 모이고, 돈은 인재를 따라 모였다. 고대 로마로부터 스페인, 네델란드, 영국과 미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패권국가들의 비밀은 자유가 최대한 보장된 도시와 국가로 세계의 인재와 돈이 모여 나타난 결과이다. 재강조하지만 정말 우리나라에 자유가 실현되어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한국의 교육과 의료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국민은 수많은 해외 경험을 통해 선진국에서 제공하고 있는 거의 모든 서비스를 직접 경험해 보거나 알고 있다. 특히, 좋은 학교 교육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으며, 직접 경험해 본 국민이 많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정부가 제공해 주는 제한된 학교 교육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교육시장을 개방하면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울산 등 대도시는 인천 송도와 같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도시가 되고, 중소 도시로 이루어진 경기도 등 도 지역은 제주도와 같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육시장을 개방하면 전국이 인천 송도와 제주도 수준의 학교와 대학교육을 제공하게 된다. 그동안 인천 송도와 제주도의 학교와 대학 중 망한 사례가 없듯이 교육시장을 개방해도 국내 대학과 학교는 망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기 때문에 오히려 경쟁력이 올라간다.

학부모와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열린 교육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다. 교육 시장의 문호를 활짝 여는 일, 이것이 바로 낙후된 한국교육을 개혁할 수 있는 핵심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교육플러스(e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