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플러스] 병자 역할(Sick role)은 미국의 사회학자 탈콧 파슨스가 1951년 처음 내세운 개념으로 의료사회학에서 질병에 걸린 환자가 취하는 특정한 행동 양식을 일컫는 말이다. 파슨스는 기능주의 학파에 속하는 사회학자로서, 질병에 걸리는 것을 환자가 정상적 상태에서 행할 수 있는 일상적 기능을 제한하고, 이에 따라 주변인들까지 교란시키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이러한 우려가 미디어에 종종 등장하는데, 자폐증을 앓는 사람들에 대한 특정한 시선이 한 예이다. 2005년 영화 <말아톤>, 2014년 미국 드라마 <굿 닥터>, 최근에는 2022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에서 자폐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들이 과연 자폐증을 앓는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느냐란 물음 앞에서는 여러 의견들이 존재할 수 있다.

영화 '증인' 포스터
영화 '증인' 포스터

2019년 영화 <증인>의 주인공은 지우라는 자폐를 앓는 학생이 맡았습니다. 대략 이 영화는 유력한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 순호(정우성)가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지우(김향기)를 만나면서 전개되는 내용입니다.

영화는 얼굴에 비닐봉지를 쓴 채 죽은 노인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죽음이 자살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그의 가사도우미 미란(염혜란)이 살해 용의자로 지목됩니다. 이 때 이 상황을 목격한 목격자 지우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순호는 그녀를 만나서 증인을 서 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유일한 증인인 지우는 자폐성 장애를 앓는 학생입니다. 그럼에도 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은 ‘자폐성 장애인은 거짓말을 못한다’라는 전제 때문입니다. 자폐성 장애인은 그들이 대인관계에서 별다른 계산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한다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론에서 타인이 거짓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하며 이는 상당한 정신 기능이 발달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Exploring the Ability to Deceive in Children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s’(2011) 논문의 실험에서는 반사회적 거짓말과 하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표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장애인에 대한 영화 속의 인물 설정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장애인은 사회적 차원에서 발달이 늦고, 사회의 때가 묻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 모습은 순호가 한 때 정의감에 찬 인물이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차 때가 묻고, 이제는 제도 안에 편입되어 가는 것과는 대조를 이루게 구도화해 놓았습니다. 그래야 순호가 지우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잃어버렸던 순수함을 깨달을 수 있게 시청자들이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니까요.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윤초원은 마라톤 대회 전 구간 3시간 내 완주를 해 낸 인물입니다. 그리고 <굿 닥터>의 주인공은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엄청난 암기력과 공간 지각 능력을 지닌 것으로 나옵니다.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경우에는 3~4살 때부터 법률 용어와 내용을 이해하는 천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영화 속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인물로 나타내는 이면에는 어떤 의도가 있을까요?

미국에서 자폐 권리운동이 진행될 때 신경다양성을 근거로 한 주장이 나왔습니다. 신경다양성은 자폐 스펙트럼의 경우 비장애인과 다른 방식으로 신경이 발달한 것일 뿐이기에 자폐는 장애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 속의 인물들처럼, 고기능(high-functioning)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말을 할 수 없고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저기능(low-functioning)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은 자폐를 장애로 인정받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생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고기능 자폐인들에게는 사회적 권익을 신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했고, 저기능 자폐인들에게는 기초적인 생활보장이 우선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두 집단의 입장차가 존재했고, 어떤 (하위) 집단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집단 전체를 대표하게 되고, 이 때 대표성을 지닌 집단에서 배제된 집단은 차별 등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미디어에 비친 특정 질환을 앓는 사람의 모습으로 인해 우리는 그들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 주변에 자폐를 앓고 있는 사람이 있고, 그들에게서 특별한 능력을 발견하려는 기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사회적 약자로 인식되고 있는 이들에게 사회적 지위를 개선하려는 좋은 의도를 펼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여러 요소들이 우세한 집단이나 목표 등으로 인해 배제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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