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플러스] 교육부가 전 세계 16개국에 설립한 34개 재외한국학교는 세계 각국에 체류하는 재외동포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며 매년 한국 교사들을 선발해 초빙교사나 파견교사 형태로 지원한다. 해당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교육뿐만 아니라 글로벌 인재로의 성장을 돕고 있다. <교육플러스는> 프놈펜·하노이(대련)·광저우·대련한국국제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소개한다. 재외한국학교 근무에 꿈이 있지만 망설이고 있다면 그 도전에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두 번째 편은 이은채 광저우한국학교 초빙교사의 이야기이다.

이은채 광저우한국학교 초빙교사. 경인교대 졸업, 경기도교육청 소속 초등교사이며 지금은 잠시 광저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은채 광저우한국학교 초빙교사. 경인교대 졸업, 경기도교육청 소속 초등교사이며 지금은 잠시 광저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코로나 3년 차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느덧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을 파고든 지도 2년, ‘코로나’는 일상부터 생각까지 많은 것을 바꾸게 한 계기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곳을 탐색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코로나는 여행이라는 큰 선물로부터 강제 격리를 시켰다. 대신 코로나 덕분에(?) 수업 연구, 자기 계발을 위해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코로나 1년 차에 처음으로 도전한 연구대회를 비롯해 코로나 2년 차에는 교사 연구 모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나름대로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길러가고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광저우한국학교에 가는 기념으로 그린 나의 캐릭터, 한복을 입고 있다..(이미지=이은채 초빙교사)
광저우한국학교에 가는 기념으로 그린 나의 캐릭터, 한복을 입고 있다..(이미지=이은채 초빙교사)

경력은 짧지만, 하고 싶은 것은 많았던 나는 ‘내년, 코로나 3년 차의 교사 이은채는 어떤 모습일까?’를 내내 생각하던 중 재외한국학교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전에는 경력이 모자라 지원조차 할 수 없어서 나중을 기약했던 재외한국학교! 여행을 못 간다면 일상을 여행으로 바꾸어보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각지에 있는 재외한국학교에서 역대급으로 많은 선생님을 뽑는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그 이유는 2년 전 코로나가 시작됨과 동시에 가셨던 선생님들께서 예기치 못한 코로나 상황에 힘들어 최소 기간인 2년을 채우고 한국으로 귀국을 많이 하시는 것이다.

베트남의 한국학교는 한 명 날까 말까 했던 티오가 20명씩 우수수 나고 있었다. 무모한 도전이긴 했지만,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한다고 도전을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이때가 기회라는 생각으로 이미 내 마음은 재외한국학교로 가 있었다.


내 인생에 중국이?


그럼 어느 나라를 갈까? 크게 중국과 동남아로 나누어서 생각했다. 여러 재외한국학교 중 어느 학교에 지원할지 선택하는 고민의 시간이 찾아왔다. 예전에는 여러 학교를 동시에 지원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교장단에서 지원 명단을 공유하기 때문에 하나의 학교에만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되어 있었다.

일단 가장 많은 재외한국학교가 있는 중국. 땅이 넓으므로 코로나 상황에도 국내 여행쯤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중국어를 잘 못하는데 가능할까? 일단 보류.

다음은 많은 인원을 뽑는 곳이 우선순위였다. 동남아 그중에서도 베트남이 눈에 띄었다. 재외한국학교 중 규모가 크고 학생 수가 많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따뜻하고 습한 날씨를 좋아하는 편이고, 무엇보다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추려서 상하이, 광저우 그리고 하노이 중에 선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중국어를 열심히 배워보고 싶기도 했고, 홍콩이랑도 가깝고 동남아랑도 가까운 미식의 도시 광저우로 가자!고 결정했다.

학교에 방문한 첫 날, 교문에 있는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앞에서.(사진=이은채 초빙교사)
학교에 방문한 첫 날, 교문에 있는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앞에서.(사진=이은채 초빙교사)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광저우한국학교 홈페이지 등에서 관련된 모든 정보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어디 잠깐 나온 짤막한 학교 소개도 나에겐 소중한 자료였다. 그중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다. 광저우한국학교 교문에 크게 적혀있는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였다. 이 말을 보고 광저우한국학교로 선택한 것에 더 큰 확신을 가졌다.

지원서를 쓰기 전 나는 왜 재외한국학교를 지원하려 하는가? 라는 물음이 들었다. 먼 타국으로 게다가 가족 없이 혼자, 익숙함을 버리고 나는 왜 가려고 하는가? 나의 대답은 바로 나 스스로 도전과 먼 타지에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을 위한 자랑스러운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물음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하고 나니 후련했다. 그렇게 지원 날짜를 기다려 지원서를 썼다. 지원서에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학교 환경, 교육과정을 분석하여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을 꽉꽉 담아서 썼다. 뚜렷한 목적과 뚜렷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보니 지원서는 술술 써졌다.

줌(Zoom)면접 당시 만든 가상배경.(사진=이은채 초빙교사)
줌(Zoom)면접 당시 만든 가상배경.(사진=이은채 초빙교사)

광저우한국학교 꼭 가고 싶습니다!


두근두근 면접 날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직접 뵙고 면접을 할 수가 없어서 줌(Zoom)으로 면접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아무도 없는 나만의 줌 회의실에서 수없이 말하기 연습을 했다.

온라인 면접에서 어떻게 정말 가고 싶은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온라인 면접이라는 그 특성을 살려 내가 가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가상배경을 만들었다. 덕분에 면접 시작과 동시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고, 매우 떨리긴 했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차분히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면접 질문 중 기억에 남는 질문은 “지금 딱 생각나는 단어를 앞에 종이에 적어보세요”였다. 짧은 시간 안에 이 질문의 의도는 무엇이지?라고 생각했고, 난 바로 광저우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식재광주食在廣州’를 썼다.

내가 가고자 하는 광저우에 대한 것을 공부하고 알아보던 차에 「차이니즈 봉봉클럽-광저우 편」을 재미있게 읽었던 나는 광저우의 지리적 위치와 음식 특성을 연관 지어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점을 어떻게 학생들과 수업으로 엮고 경험할 지 이야기했다. 덕분에 나중에 합격하고 나서 나는 식재광주로 기억되었다고 한다.


환영받지 못한 손님


합격 후 중국에 발 도장을 찍기까지 아니, 들어간다는 허가를 받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까다로웠다. 함께 들어온 동기 선생님들과 “이런 줄 알았으면 지원을 안 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의 험난한 과정이었다.

위드 코로나(with-corona)를 외치는 많은 나라들과 다르게 중국은 제로 코로나(zero-corona)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 전염성이 강한 오미크론이 퍼지고 있어 해외입국자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미크론이라는 말이 뉴스에서 들릴 때마다 나에게 느껴지는 메시지는 계속해서 ‘오지 마, 오지 마’였다.

취업 비자를 받기 위해 신체검사와 공증부터 엄격한 비자 센터 방문 그리고 일주일 전 중국대사관이 인정한 병원에서 PCR검사를 받고, 2일 전에는 서로 다른 두 병원에 들러 검사를 했다.

출국 전 정신없이 준비하며 이렇게까지 해서 가야 하나? 내가 2년 안에 한국에 올 수는 있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밤에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했었다.

자가격리 때 블로그에 매일 기록한 내용 중 일부. 랜선 생일파티, 베이징동계올림픽, 스스로 차려 먹은 떡국상과 원격 연수 강의까지 알찬 시간을 보여준다.(사진=이은채 초빙교사)
자가격리 때 블로그에 매일 기록한 내용 중 일부. 랜선 생일파티, 베이징동계올림픽, 스스로 차려 먹은 떡국상과 원격 연수 강의까지 알찬 시간을 보여준다.(사진=이은채 초빙교사)

3주간의 나만의 시간


나의 결정을 믿고, 드디어 중국에 무사히 들어왔다. 중국 광저우에 들어와 이곳이 광저우임을 알 새도 없이 바로 격리를 시작했다.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사실 격리였다. 처음 해 보는 격리를 그것도 타국에서 한다는 것에 대한 무서움과 아주 안 좋은 곳으로 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에 엄청나게 많은 것을 준비했다.

나중에 선생님들이 도라에몽 가방이라고 할 정도의 다양한 물건을 챙겨왔다. 샤워기 필터, 도마, 침대 커버, HDMI선, 전기 파리채 등등 그리고 양푼까지 ㅋ 든든한 대비 덕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어떻게 3주 동안이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은 지나갔다. 며칠 지나다 보니 나만의 루틴이 생겼고, 무엇보다 아침, 점심, 저녁 시간 맞춰 밥을 주는 호텔 덕분에 매끼 식사도 잘 챙겨 먹었다.

마냥 쉬지도 못하는 성격상 공부도, 자기 계발도 할 수 있었던 돌아보면 최고의 시간이었다. 매일 중국어 단어 40개씩 15일이면 600단어를 완성할 수 있는 중국어책을 보며 공부를 열심히 하고, 보고 싶었던 책과 드라마, 영화보기, 친구들과 영상 통화하며 이야기 나누기 등 출국 전 정말 바빴던 시간을 보상 받듯 푹 쉬는 시간이었다.

과일이 많이 나는 광저우라 그런지 끼니마다 주는 과일을 많이 먹고 꾸준히 운동하다 보니 피부도 좋아지고 건강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혼자 하는 것이 서툴렀던 나에게 나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고 나를 더욱 아끼는 시간이자 자취생활 예행연습을 하는 기분이었다. 거의 매일 코를 깊숙이 찔러대는 코로나 검사(어떤 날은 양쪽을 동시에 찌르기도 했다.)만 빼면 말이다.

어쩌면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만족하기 위해서 긍정회로를 풀가동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격리 마지막 쯤에는 5cm 남짓 열리는 창문을 바라보며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도 했지만, 또 막상 나간다고 생각하니 내가 진짜 세상으로, 중국으로 나간다는 생각에 살짝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왼쪽부터) 난생 처음 집 계약 사인을 하는 모습과 학교 근처 동네 야윈청 모습.(사진=이은채 초빙교사)
(왼쪽부터) 난생 처음 집 계약 사인을 하는 모습과 학교 근처 동네 야윈청 모습.(사진=이은채 초빙교사)

첫 홀로서기, 그것도 중국에서


격리가 끝나고 나오니, 마치 3주 동안 다리를 쓰지 않은 굳은 느낌으로 어정쩡하게 걸어 나왔다. 홀가분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중국 핸드폰 번호를 만들고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어려웠고 무사히 넘어가는 것이 없었다. 핸드폰 번호를 만들고 개통하는데 머그샷처럼 번호가 쓰인 종이를 들고 몇 번이나 사진을 찍었고, 은행 계좌를 여는 데는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 과정을 혼자 했으면 더욱 막막했을 텐데 학교 행정실에서 준비해 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내가 진. 짜. 살 곳을 찾아야 했다. 한국에서도 안 해 본 첫 자취를 중국에서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잠이 안 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그렇게 첫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집 구하기! 광저우한국학교는 따로 관사가 있는 게 아니라 정해진 주택수당을 지급한다. 따라서 내가 살 곳을 정하면 된다.

광저우한국학교가 있는 야윈청(亚运城)에는 새로 지은 아파트들이 많아서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지만 깨끗한 집들이 많았다. 부동산을 통해 여러 집을 순식간에 보고 결정해 당장 1~2일 안에 들어가야 했다. 겨우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는데 산 넘어 산이라고, 하필 마음에 드는 집의 주인이 광저우에 없었다. 기다려서 계약하면 주숙등기1)가 늦어져 처벌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1) 중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숙박 등록 정보를 보고하는 주숙등기를 반드시 해야 한다.

집주인은 광저우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세상이 참 좋아서 다행히 온라인으로 계약하고 나의 첫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국에서 한 달 전에 배로 부친 짐이 딱 도착했다. 그 안에 내가 준비하면서 넣었던 물건들을 보고 있노라니 살짝 눈물이 났다. 새집이다 보니 필요한 것이 많아 새로운 살림살이들을 사야 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세계의 공장 중국이 아닌가? 타오바오(淘宝 보물찾기라는 뜻)와 핀둬둬(拼多多 많이 모이면 좋다는 뜻)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그것도 값싼 가격에! 중국어가 서툴러 무슨 말인지 모를 때는 파파고가 도와주었고, 조금씩 쇼핑 중국어부터 익혀가고 있었다.

그렇게 학교에 가기도 전, 그 어디서도 할 수 없는 큰 경험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들었던 중국에 들어와서 언제 그런 과정이 있었냐는 듯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 마냥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가 아니다 보니 우리나라,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것은 금물이다.

제약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나의 적응기를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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