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플러스] 교육부가 전 세계 16개국에 설립한 34개 재외한국학교는 세계 각국에 체류하는 재외동포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며 매년 한국 교사들을 선발해 초빙교사나 파견교사 형태로 지원한다. 해당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교육뿐만 아니라 글로벌 인재로의 성장을 돕고 있다. <교육플러스는> 프놈펜·하노이(대련)·광저우·대련한국국제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소개한다. 재외한국학교 근무에 꿈이 있지만 망설이고 있다면 그 도전에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첫 편은 이은혜 프놈펜한국국제학교 파견교사의 이야기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누군가를 위해 편지가 아닌 시를 쓰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준 적은 많지? 그런데 혹시 다른 사람을 위해 시를 써준 적이 있니?”
“아니요.”
“오늘은 누군가를 위해 시를 써보자.”
“네???”

오늘 방과후 독서논술 시간에 읽은 [안네의 일기]에서, 안네의 아버지가 안네의 생일에 시를 써서 선물한 장면을 읽었다. 그래서 함께한 독후 활동은 친구를 위한 시 쓰기였다.

친구를 위해 시를 쓰고 돌려가며 읽고 각자 코멘트를 달아주었다.(사진=이은혜 파견교사)
친구를 위해 시를 쓰고 돌려가며 읽고 각자 코멘트를 달아주었다.(사진=이은혜 파견교사)

16개의 방과후 강좌?


프놈펜한국국제학교는 주당 16개의 방과후 수업이 필요하다. 하루 한 시간의 방과후 수업 시간에 저학년 2개, 고학년 2개, 하루 4개의 방과후 수업이 있으며, 금요일을 제외하고 주 4일 운영한다.

이 말인즉슨 담임선생님들이 방과후 수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한주에 최소 2개 강좌를 맡아야 한다.

재외한국학교 선발에서 특기 영역이 중요한 이유가 이것인 것 같았다. 보통 일반 수업 외에 방과후 수업을 담임교사가 맡아서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루 1시간 수업을 하러 오는 방과후 선생님을 따로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의 기획력과 적응력을 부르는 현실


그러나 현실적인 여건이 녹록지 않다. 피아노를 잘 쳐도 피아노를 지도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피아노가 학원처럼 비치되어 있지도 않고 여러 대를 구비하기에는 예산의 한계가 있다. 컴퓨터 방과후 수업을 하려고 해도 컴퓨터실이 따로 없거니와 학생들의 교육용 노트북 수는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어쩌면 교사의 특별한 기능보다, 어떤 강좌를 맡게 되더라도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수업을 운영해나갈 수 있는 기획력과 적응력이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불평 대신 길을 찾아내 학교를 잘 이끌어 가기 바라오.’ 이런 마음으로 교육부에서는 교사들을 재외한국학교로 보내는 것 같다.

아무튼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 필요들을 고려하여 올해 프놈펜한국국제학교에는 16개의 방과후 수업이 운영되고 있고, 나는 저학년 독서교실과 고학년 독서논술반을 처음으로 맡게 되었다.


누가 독서논술반을 신청하겠어요?


처음에 방과후수업 협의회를 할 때 독서논술반을 누가 신청하겠냐며 학생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수업으로 바꾸자고 건의했었다. 하지만, 작년 말 교육과정 설문결과 학부모님들의 희망 비율이 높은 강좌인 것을 보고 운영해보기로 했다.

독서논술로 방과후 수업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영어수업, 사물놀이부, 컴퓨터를 방과후로 가르친 적은 있었지만, 독서 관련 수업을 수익자부담인 방과후로 개설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유인즉슨 방과후 시간까지 공부하는 수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학년 독서논술반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술이나 악기, 컴퓨터 등 재미있는 방과후 수업이 많은데 제일 지루하고 재미없는 독서논술반을 들어오게 되어서. 게다가 몇몇 학생은 동시간대의 우쿨렐레 수업에 학생들이 많이 몰려 인원 조정이 불가피해 교사의 회유(?)를 통해 독서논술반으로 옮겨온 것이었다.

설상가상 영상제작반 선생님은 1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어 방과후를 한번 선택하면 1년을 운영하자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 ‘2학기 때는 아이들이 다 독서논술반을 안하고 싶어할텐데.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했었다. 독서로 어떻게 학생들이 재미있어하는 수업을 할 수 있을까가 나의 최대 고민이 되었다.


"이제 시작이다"...한 책 읽기 선정


‘새로운 도전은 늘 나의 세계가 한 걸음 확장되는 기회’라고 믿는다.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책을 주제로 모인다는 것은 내가 아니어도 책 속 구절들이 의미를 만들어줄 것이었다. 배꼽 빠지는 재미는 없을지라도 배움의 재미가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책은 고전 중에서 선택했다. 오랜 시간 동안 읽어도 가치가 있는 책을 읽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민고민하다 마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고,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재미있는 법이니 ‘안네의 일기’로 선택을 하였다.

책 '안네의 일기'.(사진=이은혜 파견교사)
책 '안네의 일기'.(사진=이은혜 파견교사)

나의 방과후 일기에 담긴 두 달의 기록


2022. 3. 16. 수.

첫 주는 실패였다. 한 챕터를 읽고 나서 안네의 일기의 역사 배경을 설명하고 현재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어떤 심정일지를 함께 이야기해보았다. 아직은 서로 낯설기도 하고 어수선하게 40분이 끝나버렸다. 속상하고 미안했다.

2022. 3. 23. 수.

두 번째 주가 되었다. 한 챕터를 읽고 나서, 네 부분으로 나누어 메모를 했다. 알게 된 것, 궁금해진 것, 인상적인 장면이나 그림으로 나타내기, 나의 느낌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누어 기록하고 싶은 칸만 하게 했다. 독후 활동에 대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자신이 쓴 것을 서로 이야기해보았다. 역시나 어수선했다. 그런데 한가지 희망을 발견했다. 모두 돌아가며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 빛나는 것을 보았다.

책을 읽고 메모하기: 알게된 것, 궁금한 것, 인상적인 장면 그리기, 느낀 점의 네 칸으로 나누어 쓰고 싶은 칸에 메모한다.(사진=이은혜 파견교사)
책을 읽고 메모하기: 알게된 것, 궁금한 것, 인상적인 장면 그리기, 느낀 점의 네 칸으로 나누어 쓰고 싶은 칸에 메모한다.(사진=이은혜 파견교사)

2022. 3. 30. 수.

세 번째 주가 되었다. 시작하면서 아예 책상을 둥글게 배치했다. 오늘은 은신처로 급하게 가면서 안네 식구가 짐을 꾸린 장면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내가 만약 우크라이나 사람들처럼, 안네처럼 갑자기 집을 떠나게 간다면 나는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를 그림으로 그리고 한 명씩 돌아가며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학생이 발표하면 서로 코멘트를 하거나 질문을 했다. 서로의 그림을 보며 ‘나는 이건 생각 못 했던 것인데’ 하며 놀라기도 하고 ‘뭐야 저런 것도 들고 간다고?’하며 깔깔 웃기도 했다.

은신처로 가는데도 어떤 학생은 거북이와 먹이를 챙긴다고 했다. 조금씩 아이들의 마음 문이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학생들의 관심사도 알 수 있었다. 이 수업을 통해 느낀 것은 아이들도 자신의 이야기가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방적 듣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수업이 재미있어진다는 사소한 진리를 마음에 다시 새겼다.

내가 은신처로 간다면 가지고 갈 것들.(사진=이은혜 파견교사)
내가 은신처로 간다면 가지고 갈 것들.(사진=이은혜 파견교사)

2022. 4. 20. 수.

방과후 수업 교실에 가니 아이들이 자리를 먼저 둥글게 만들어 놓았다. 감동을 받았다.

지난주에 뚜얼슬랭 박물관을 다녀왔기 때문에,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 정권의 킬링필드 사건의 유사점이 많아 비교해보는 활동을 했다. 유의미한 활동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없어 학생들의 삶과 연결짓는 활동을 하지 못했다. 급하게 수업을 마쳐서 아쉬웠다. 다음번 수업에는 학생들의 삶을 다시 끌어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대인 학살과 킬링필드 비교하기 활동.(사진=이은혜 파견교사)
유대인 학살과 킬링필드 비교하기 활동.(사진=이은혜 파견교사)

2022. 4. 27. 수.

오늘은 안네의 일기 중 ‘은신처의 풍경’이라는 챕터를 읽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오늘 각자 교실의 풍경을 안네에게 편지로 써 보자고 했다. 쓴 글을 돌려 읽으며 코멘트를 달기로 했다.

한글이 서툰 학생도 있었지만, 평가받는 것이 아니므로 정말 자유롭게 편안하게 썼다. 쓴 후에는 서로 돌려 읽고 코멘트를 달기로 했다. 재미있는 표현, 인상적인 표현에 밑줄이나 별표도 하고, 자신의 소감을 짧게 써주었다.

글도 글이지만 서로의 코멘트를 읽는 재미가 색달랐다. 아이들이 댓글 문화에 익숙해서 그런지 코멘트를 달아주는 솜씨가 좋다. 학생의 글을 교사만 검사한다는 인식은 굿바이. 친구들과 돌려읽기가 글을 쓰는 흥미를 북돋아 준다.

2022. 5. 4. 수.

여섯 번째 주가 되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앉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학생들이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제 친구 은형이는 독서논술이 뭐 하는 건지 몰라서 신청을 못했대요.”
“아, 선생님 승준이도요. 뭐 하는 건지 몰라서 신청을 못했대요.”

이 말을 듣고 너무 기뻤다. 마치 이 수업이 이렇게 진행되는 줄 알았으면 신청했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전해준 아이들이 너무 고마웠다.

오늘은 안네가 성격 때문에 고민하는 부분을 읽었는데, 성격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았다. 대부분 ‘친구’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얼마 전 레바논에서 전입해온 학생이 성격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나라’라고 하였다. 한국, 레바논, 캄보디아... 가는 나라마다 자신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직 낯선 캄보디아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것만 같아 마음이 짠했다.

2022.5.18. 수.

아이들이 서로에게 써 준 시와 코멘트들이 너무 예뻐서 문집으로 만들어서 학기 마칠 때 선물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그 문집을 책장 속 깊이 두었다가 나중에 커서 ‘아, 이런 게 있었지?’ 하고 책장을 넘기며 떠올려 주기를, 그리고 ‘안네의 일기’라는 책을 볼 때마다 함께했던 이 시간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책을 통한 배움의 따뜻한 기억들이 많이 쌓였으면 한다.

그나저나 다음 주에 읽을 챕터에 안네가 키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초등학생들인데, 이 챕터를 빼야할지 그대로 넣어서 읽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될지 고민이 된다.

그 외에 은신처에 ‘뒤셀’씨가 새로 왔을 때 안네가 건네준 은신처의 규칙을 보고, 우리 집의 규칙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이야기해보기도 하고, 안네가 엄마에 대한 불만을 적은 부분을 보고 부모님 이야기도 해보았으며, 일기장 ‘키티’처럼 생일 선물로 받은 것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이야기해보았다.

안네가 성격 때문에 고민하는 부분을 읽고, 성격이 타고나는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도 가졌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아이들이 차츰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집의 규칙.(사진=이은혜 파견교사)
우리집의 규칙.(사진=이은혜 파견교사)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갈수록 마음속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왜냐면 경청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독서 방과후 시간에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것이 점점 자연스러워져 간다는 것을 느꼈다. 표현한다는 것은 들어주는 대상이 있다는 믿음에서 온다.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가 의미가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안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일기장인 ‘키티’에게만 마음을 쏟아놓을 수밖에 없었다.

혹 독서논술시간에 왜 글은 안 쓰고 이런 것만 하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논술이라는 것도 우선은 자신에 대해 알고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처음에는 의견을 말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글을 써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표현의 문이 열리면, 학생들이 글을 쓰는데 두려움이 줄어들고 2학기에는 생각을 정리하여 논리적인 글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독서논술 교실도 한 학기로는 부족하고 일 년을 해야 강좌의 목표가 완성될 것 같다.

이 시간을 통해 학생들이 독서모임이 즐겁다는 것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나의 말과 글을 누군가는 분명히 들어주고 읽어준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첫 시간에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뜻을 누군가 물었다. 칼이 아닌 펜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독서논술을 하는 가장 큰 목표가 아닐까. 세상을 움직이는 한 줄 글을 쓰는 우리 독서논술부 아이들이 되기를.

이은혜 프놈펜한국국제학교 파견교사.
이은혜 프놈펜한국국제학교 파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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