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가장 특별한 만남...정민이의 삶을 바꾼 나, 나를 성장시킨 정민이

[교육플러스] 교육부가 전 세계 16개국에 설립한 34개 재외한국학교는 세계 각국에 체류하는 재외동포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며 매년 한국 교사들을 선발해 초빙교사나 파견교사 형태로 지원한다. 해당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교육뿐만 아니라 글로벌 인재로의 성장을 돕고 있다. <교육플러스는> 프놈펜·하노이(대련)·광저우·대련한국국제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소개한다. 재외한국학교 근무에 꿈이 있지만 망설이고 있다면 그 도전에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첫 편은 이은혜 프놈펜한국국제학교 파견교사의 이야기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특별한 아이가 입학했다


“I think he is autistic.”(그 학생.. 자폐 성향이 있는 것 같아.)
“......”

우리학교 원어민 영어 선생님이 1학년 수업을 하고 나서 나에게 한 말이었다. 나 역시 첫날부터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입학식 날 어머니가 하교 시간에 아이를 픽업하러 왔을 때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다. 혹시 특수학생이 아닌지 정확하게 검사를 받아 보시는 게 좋겠다고.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조기에 조치를 하는 것이 학생을 위해서 더 좋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알겠다고 했지만, 여기는 캄보디아이고, 검사를 하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내가 도움을 드리거나 정보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된다.

캄보디아인이지만 한국에서 정민이(가명)를 낳았고 한국에서 어린이집 보냈을 때 좀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 후에 캄보디아에 오게 되었고 계속 집에서 캄보디아인 할머니와 지냈다고 한다. 유치원을 다닌 적도 없고 바로 한국국제학교로 입학하였고, 게다가 7살. 조기입학을 시킨 경우였다.

힘든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정민이는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수업시간에 계속 돌아다니고,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은 한 단어 이상 하지 못했다. 짧은 한 단어로만 자신의 의사를 말하는 아이였다.

원어민 선생님은 1학년 수업만 하고 나면 “정민이 때문에 수업 진행이 너무 어렵다. 수업 어시스턴트를 고용해 달라”고 요구하며 수업 진행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업하는 매시간이 힘들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미안했다. 한국 같았으면 도움반 선생님이 계셔서 이 아이를 도와주고, 국어, 수학 시간에 기초 학습을 시켜주었을 텐데, 우리 학교는 특수교사가 없을뿐더러, 학생 한 명을 위해 어시스턴트를 고용하는 것은 학교 재정상 불가능했다.

특수교사가 없는데 특수학생을 입학시킬 수 있느냐고 불평하는 마음을 넌지시 얹어 행정실에 묻다가 순간, 교사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잠깐! 나 지금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들만 가르치려고 하는 건가? 나 지금 학생 지도가 힘들다고 불평하는 것인가? 그것이 내 일인데? 그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이곳에 온 이유인데?’

그 학생은 나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아이였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 온 것이 이 한 아이를 위해서인지도 몰랐다.


정민이도, 주위 학생들도 변하게 한 것은 '칭찬'


소리를 질러도 보고, 타일러도 보고, 그 아이를 위해서 매일 기도도 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았지만,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었다.

어차피 효과가 없으니 스트레스도 줄일 겸, 주된 방법으로 나는 ‘칭찬’이라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칭찬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날부터 아주 작은 선만 그어도 큰 목소리로 칭찬했다.

“우와! 우리 정민이 잘했네! 이름도 잘 썼네!”
“우와! 우리 정민이 오늘은 색칠도 했네!”
“우와! 우리 정민이 수학 엄청 잘 하네!”
“우와! 우리 정민이 순서에 맞게 잘 썼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도 크게 칭찬을 해주었다. 다행히 정민이는 자폐증세가 약간 있어 보이지만 인지능력은 뛰어난 아이였다. 유치원도 다녀보지 않은 학생이라 학습 습관이라는 것이 조금도 잡혀있지 않아 너무 힘들었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정민이에게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신기한 것은 교사가 정민이를 대하는 태도가 변하자 다른 학생들 역시 정민이를 바라보는 태도가 변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오늘 정민이가 잘했어요”, “선생님, 정민이가 요즘에 자리에 잘 앉아 있어요”라며 친구들도 정민이의 좋은 점을 보기 시작했다.


드.디.어!! "정민이가 스스로 이름을 쓴다!"


처음에는 크레파스로 색칠을 하는 것조차 거부했던 아이였다. 안하겠다고 떼를 쓰고 크레파스의 손잡이 종이를 죄 다 뜯어 놓아 나를 폭발하게 만들었다.

“아니 도대체 왜 색칠하는 것을 못하겠다는 건데?”

정민이의 크레파스. 종이를 모두 뜯어놓아 포스트잇 종이를 말아주었다.(사진=이은혜 교사)
정민이의 크레파스. 종이를 모두 뜯어놓아 포스트잇 종이를 말아주었다.(사진=이은혜 교사)

이해할 수 없었다. 크레파스에 종이를 하나씩 말아서 붙여주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랬던 정민이가 두 달이 지난 지금은 크레파스로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색칠까지 하는 아이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크레파스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고, 파스텔로 색칠하는 경험만 있었던 것 같다. 크레파스 종이를 뜯어서 옆을 자꾸 긁어내 손으로 문지르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연필을 잡을 때마다 ‘으 으’ 소리를 내며 내 손을 잡아끄는 아이였다. 그러나 자음의 쓰기 순서를 알려주면, 그 순서를 정확히 기억해서 그대로 쓰는 아이였다. 이제는 내 손이 없어도 연필을 잡고 글자를 쓰는 아이가 되었다.

아침에 인사할 때 ‘으느하요’라고 했지만 이제는 제법 발음도 ‘아녕하데요’ 정도의 발음으로 공수 자세로 인사하는 교육이 되었다.

도시락을 먹을 때면 온갖 소리를 내며 놀이를 하느라 한 시간 동안 밥을 먹던 아이가 이제는 30분 안으로 식사를 마치고 책상 위나 바닥에 흘린 음식은 휴지로 싸서 쓰레기통에 버릴 줄 아는 학생이 되었다. 책상이나 바닥에 음식을 흘리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칫솔과 치약을 항상 다른 친구 컵에 꽂아두거나 싱크대 위에 그대로 올려놓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 양치 컵에 꽂아 둘 줄 아는 학생이 되었다.

아침에 오면 알림장 공책을 낸다는 것을 첫 3주 동안 매일 설명하고 가방에서 꺼내는 것을 도와주고 나니, 이제는 스스로 공책을 찾아서 내고 아침에 체온체크를 마치고 체온을 스스로 적는 학생이 되었다.

처음에는 책가방 지퍼를 잠그지 못해 ‘으어’ 하며 징징대며 소리를 지르던 아이가 스스로 지퍼를 잠글 수 있게 되었다.

싸인펜의 뚜껑을 잘 닫지 않고 뚜껑을 매일 흘리고, 잘 안되면 교실 끝까지 힘껏 던져버리던 아이였지만, 이제는 뚜껑이 없어 말라버린 색깔들은 크레파스에서 찾아서 색칠하는 아이가 되었다.

백지 같은 정민이가 하나씩 생활 교육이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어느덧 나의 하루의 보람이 되고 있었다.

매번 내가 손을 잡고 정민이의 이름을 써주다 스스로 정민이가 자기 이름을 썼을 때의 감격이란!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는 이렇게 책상 서랍 정리도 스스로 잘하는 학생이 되었다.(사진=이은혜 교사)
이제는 이렇게 책상 서랍 정리도 스스로 잘하는 학생이 되었다.(사진=이은혜 교사)

나만 정민이를 도왔을까? "오히려 나의 힘이 되는 학생들"


어느 날 정민이 어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제사가 있어서 아침에 늦게 출발해 정민이가 오늘 학교를 못 나온다고 했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이렇게 생각했다.

‘아... 오늘은 정민이가 안오니 좀 편안한 하루가 되겠구나.’

그러나 나의 에너지는 전날과 똑같이 소진되었고 왜 그런지 오히려 더 힘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퇴근했다. 다음날 정민이가 다시 학교를 나오고 수업을 하며 왠지 모르게 행복한 하루를 보냈는데, ‘왜 그렇지?’ 하다가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정민이가 조금씩 교육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에게 오히려 힘이 되는구나!’

이 기분은 정말 교사로서 신비한 경험이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학생이지만, 그 학생이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적응해가고 ‘교육’이 이루어지고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오히려 교사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느낀 새로운 순간이었다. 이것은 교사로서 나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을 만큼 큰 깨달음이었다.

학부모 상담주간에 학교로 찾아오신 어머니께도 가정에서도 도와주셔서 정민이가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이제는 수업시간에 책상에 잘 앉아 있고, 얼마 전에는 원어민 선생님들에게 정민이 수업 태도가 좋았다고 칭찬을 들었으며, 정민이가 한 번 이야기 해주면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능력이 좋다고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가 너무 기뻐하시고 한국학교를 꼭 보내고 싶었는데 여기에 보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 정민이로 인해 가졌던 불평 가득했던 생각들이 너무 죄송했다.

책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표지.(사진=이은혜 교사)
책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표지.(사진=이은혜 교사)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만남 '교사와 학생'


언젠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읽으며, ‘왜 제목이 ’변신이야기‘일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누군가를 만나 사람이나 신들의 모습이 변하는 이야기이다. 아름다운 여인이 황소가 되기도 하고, 연못 옆에 나무가 되기도 하고, 머리카락이 뱀이 되기도 한다.

인생에서는 무수한 만남이 일어나고, 그 ‘만남’을 통해 사람에게는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제목을 ‘변신이야기’로 지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에 여러 가지 만남이 있으나 특히 교사와 학생의 만남은 인생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특별한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정민이가 나를 만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갈 것을 믿는다.

그러나 교사를 통해 학생만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만남은 늘 상호적이며 만남을 통한 변화 역시 상호적이기에, 정민이를 통해 교사로서 나 역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고 믿는다.

정민이를 만나 불평불만 가득한 교사로 변신할 뻔했으나, 매일 보람을 느끼는 교사로 변화된 것에 감사한다.

월요일에 가면 또다시 나는 ‘정민아!’ 하며 몇 번씩 소리를 지르겠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학생의 생활이 잡히고 연필을 바로 쥐고 글씨를 바르게 써나가는 모습에 슬며시 미소 짓고 또다시 모른 척 큰 목소리로 폭풍 칭찬을 해 줄 것이다.

“우와! 정민아! 오늘 너무 잘했어!!!”

# 학생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이은혜 프놈펜한국국제학교 파견교사.
이은혜 프놈펜한국국제학교 파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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