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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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플러스] 최근 신문 기사에 의하면 “직장에서 늘 겉도는 것 같아 고민이에요”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는 학교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엇비슷하다. 

예컨대 교직원 집단이나, 학급, 학생회, 학년공동체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겉도는 것을 고민하는 교직원과 학생이 많아졌다. 소위 코로나19 사태가 사회적 거리두기처럼 심리적 거리두기를 부채질한 시대상이라 할까. 이런 사람들을 요즘 유행어로 ‘아싸’라 호칭한다. 이른바 ‘아웃사이더’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인싸’가 되어 조직 내에서 ‘인사이더’로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앗싸는 당사자가 되어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그가 느끼는 정서를 아무리 수사적인 언어를 동원해 설명해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문제는 심리적 배척 현상이 심화되면 소위 ‘왕따’가 되고 더 나아가 정서적 폭력이나 학대로 이어지며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의 위험성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는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하듯 학교는 뒤늦게 불행한 사건에 주목하게 되고 사전에 특이한 정서 행동 파악 및 지도 유무에 대한 책임의 소용돌이에 빠지곤 한다. 요즘 이러한 학교 현장의 실태가 늘어가고 가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해결책으로 과거의 전통적인 방식을 새롭게 적용하기를 제안하고자 한다. 

잠시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자. 부모들은 자녀가 관련된 ‘아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호하는 재래식의 방식이 있다. 그것은 부모가 판단하든 아니면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의 판단이든 일종의 물질적 인심에 의존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자녀의 친구들에게 좋아하는 것(음식, 학용품 등)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아이 스스로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나누어 주거나 심지어 애지중지하는 물건의 소유권을 양도하여 인심을 얻고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한다. 

이것이 실제로 학생들 사이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의 생일잔치에 친구들을 많이 초대하여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거나 정서적 유대감을 돈독하게 해준다. 이는 자녀가 ‘아싸’가 되지 않도록 예방 조치하는 부모로서의 고뇌에 따른 해법 중의 하나다. 

이를 조금 더 시대적으로 앞선 유사한 사회적 관습으로 비교해 보자. 과거엔 금권선거가 분위기를 바꾸는 촉매 역할을 톡톡히 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는 후보자에게 호감도를 높이고자 순간적으로 물질적 제공이 주어지고 이것이 종국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최종 순간에 효과를 발휘하는 접근 동기 역할을 했다. 

예컨대 고무신이나 막걸리, 음식 접대, 단체 여행 또는 현금 봉투가 오고 가던 고질적인 금권선거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던가. 물론 이는 사회문제를 촉발하여 현재는 폐지되거나 불법으로 처벌하고 있다. 이는 모두가 물질 제공으로 마음의 전환을 도모하려 한 우리의 생활 단면이기도 하다. 

학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와 유사한 전례가 암암리에 이어져 왔다. 부모가 자녀로 하여금 학생회 임원(학생회장, 학급반장)에 당선되도록 하기 위해 또는 교사가 학생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학생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나 물질을 제공하여 인심의 전환을 시도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사의 경우 자기 비용으로 은근히 실행하기에 눈에 띄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하듯이 결국 타 교사와 차별화된 행위는 드러나기 마련이고 이는 곧 교육적으로 올바른지 그른지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쨌든 그 배경에는 학생들이 ‘선생님이 우리에게 호감이 있다’거나 ‘선생님이 우리와 잘 지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라고 믿는 효과가 작용한다.

앞서 비슷한 사례들과 같이 인간의 마음을 물질로 전환하면 진심을 전달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저 유치하다고 웃고 넘기기엔 인간의 심리와 공동체 문화 의식에 내포하는 의미가 결코 가벼울 순 없다. 

또 다른 경우를 최근의 사례에서 찾아보자. 2020년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도시가 봉쇄되고 바깥출입을 자제하던 시기, 우리를 먹여 살린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배달노동자들이다. 그런데 택배 기사나 우체부 등 배달의 일선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식을 준비하고 감사의 편지를 써 문밖에 내다 놓는 경우가 언론에 보도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장면에 사람들의 가슴이 따뜻해지고 감성의 온도가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왜냐면 마음을 건드리고 만져줬기 때문이다. 이는 젊은이들이 연애를 할 때 전화나 문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만나 연인의 손을 잡고 안아주는 스킨십이 중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사람들 사이에 물질을 남기고 또는 접촉함으로써 서로 고마워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 감정과 이성의 동물인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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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사람 간에 터치 즉 만져주는 것은 소통의 중요한 요소다. 초등학교에서 반장 선거에 물질이 손에서 손으로 오고 가는 것도 사실은 같은 맥락이다. 성인들도 마찬가지다.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에게 작은 선물을 남겨보라. 가격은 문제가 안 된다. 그 사람의 마음을 상징하는 어떤 물질을 만지는 것은 손을 만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아싸라고 생각되어 고민이 된다면, 좀 더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다면, 조금이라도 더 용기를 내어 그 사람들에게 커피나 초코렛이나 음료수 등 작은 물질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면 그 물질을 만짐으로써 더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인간의 뇌는 촉감의 뇌, 햅틱(haptic)이라 불린다. 이는 뇌가 촉감을 통해서 서로 더 가깝게 느낀다는 말이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 사이,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더 많은 애정과 애착을 형성하는 것은 서로의 피부를 접촉하고 이를 감지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킨십의 효과’라 할 수 있다.

결국 인간관계에서 내 마음을 담은 어떤 물질을 만지는 건 눈에 안 보이는 마음을 직접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사실이다. 이는 만질 수 없으면 애착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애착은 애정보다 더 우선이다. 애착은 터치 곧 스킨십이다. 교사가 학생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거나 학생들 간에 좋은 우정을 나누고 싶다면 어떻게든 손을 잡거나 안아주는 것과 같은 촉감이 중요하다.

문제는 이를 이상하게 보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다. 성인지 감수성이 민감한 상황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 대신에 내 마음을 담은 물질, 촉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제공하는 것으로 대체해 봄이 어떨까.

이 물질이 바로 아기들에게는 애착 인형과 같다. 아기는 양육자의 촉감, 체온, 냄새를 느끼면서 안정감을 찾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그래서 아기들은 부모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때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물질이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인형이거나 베개, 이불이 되는 것은 흔한 사실이다. 학교에서도 교사가 학생들에게 애착 인형은 아니라도 자기 마음이 담긴 무언가를 건네준다면 그 작은 행위가 교육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필자는 이에 교사의 과제 확인용 멋있는 사인이나 격려(위로) 편지, 간단한 칭찬 메모, 개인 정보 노출이 심하지 않은 친목용 집단 사진의 부착, 졸리는 오후 시간용 간단한 캔디, 음료수 함께 마시기 등등을 권장하고 싶다. 이것이 현장에서는 순간적이나마 교사가 아싸에서 인싸로 전환되는 교육용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온라인 수업으로 학교 교육이 전환된 이후 대면수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애착 상황의 필요성이 요구되기 때문이 아닌가. 

이제 회복되어 가는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의 새로운 학교생활에 교사와 학생 간의 실천이 가능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물질이 무엇인지 저마다의 교육환경과 분위기, TPO(시간, 장소, 상황)를 고려하여 따뜻한 인간관계 및 교육적 효과를 함께 기대해봄 직하지 않은가.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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