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플러스] 모두가 교육을 이야기합니다. 누군가는 음침하게 수군거리고, 누군가는 부끄러운 듯 중얼거립니다. 큰 소리로 들리는 것은 온통 풍문뿐인데, 풍문만 들으며 살기에 교육은 인간사에 너무 중요한 주제입니다. 어렵지는 않게, 핵심을 알기 쉽게 본질까지 꿰뚫는다는 자세로 여러 교육에 관련된 이야기를 풀겠습니다. <교육플러스>는 박석희 선생님과 함께 풍문과 현학의 시대, 알기 쉬운 직썰로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자 합니다.

교원평가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부적격 교사를 내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선생질 잘하라고 철밥통 줬더니 마음에 들지도 않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겠으며 능력도 없이 빈둥빈둥 노는 것 같으니 잡아서 족치고 싶다는 말입니다. 

대선 출마에 도전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교육개혁을 넘어 혁명 수준의 변화를 제안한다’며 부적격 교사를 퇴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퇴출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교사의 자격에 미달하는 부적격 교사인지를 정의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철밥통의 보호를 받으며 사회에서 선생님이라고 대접까지 해주는데 부적격인 교사를 계속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부적격’이라는 말과 ‘퇴출해야 한다’는 사실 동어반복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럼 문제는 우리는 어떤 것들을 ‘교사의 자격’이라고 분류하여 교사로서 적격인지 부적격인지 분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쉽게 ‘잘 가르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사명감으로 가르치는 교사’를 바람직한 교사상으로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우리는 이를 교사의 자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정도의 말은 ‘좋은 교사’라는 말과 그다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평가 결과를 남겨 어떤 사람을 퇴출하기까지 하려면 어떤 것이 잘 가르치는 것이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며, 어떤 마음이 사명감인지를 정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잘 가르친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교육은 목표와 내용, 교수·학습 방법과 평가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는 국가공교육의 기준이 되는 교육과정 문서에서 쓰는 틀과 일치합니다. 보통 직관적으로 어떤 교사가 잘 가르치느냐 아니냐의 여부는 수업 장면을 떠올리며 결정하기 마련입니다. 수업 장면은 대개 교사가 채택하는 교수·학습 방법이 실현되는 활동들로 구성됩니다. 

여기서 교사가 수업을 잘하느냐, 잘 가르치느냐를 이야기할 때, 교사가 ‘얼마나 강의를 잘하느냐’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의법은 수많은 교수·학습 방법의 하나일 뿐입니다. 아무리 강의를 유려하게 수행해내는 교사라 하더라도 초등학교에선 관리자나 다른 수업 평가자의 경우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강의하는 것을 매우 부적절하고 안 좋은 교수법이라 비판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많은 기술적 수단과 수업 기법이 혼합된 지금의 현실에서는 예전의 학교만을 기억하는 이들이 상상도 하기 힘든 수많은 교수·학습 방법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확산 일로에 들어서면서 원격교육이 본격화됐고 교수·학습 방법은 교육 자료를 어떻게 큐레이팅하고 배치 및 정리하는 지의 영역까지 포괄하게 되었습니다. 몇몇 실험적인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던 블렌디드 러닝 같은 것도 이젠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물며 정보기기 트렌드에 둔감하더라도 학생들의 문제 풀이를 정말 세심하게 돕고 학생들의 학력 촉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는 선생님도 있는 반면, 단순히 문제 풀이만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수업 영역을 개척하는 선생님들도 있습니다. 

아직 선생님들이 교육과정과 학급을 운영하며 다루어야 할 교육의 목표와 내용, 평가의 영역은 본격적으로 다루기도 전에 교수·학습 방법에서부터 ‘수업 능력’을 측정하기가 매우 복잡해집니다. 

섣불리 쉽게 생각하면 뭐든지 간단하다는 태도로 교육 환경의 변화와 선생님들의 다양한 수업 양상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고민 없이 단순한 잣대로 일방적으로 어떤 선생님은 수업 능력이 뛰어나고, 어떤 선생님은 수업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규정지어 버린다면 오히려 부적격 교사를 내쫓아 교육을 혁명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시도가 오히려 공교육의 발전을 막고 수업의 형태가 획일화되면서 질적인 저하까지 동반하는 하향평준화를 가져오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학급 운영과 교사들의 교육과정 운영에 있어 교사들의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어떤 내용과 목표를 추구하고 어떤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이 보다 국민에게 많은 이로움을 가져오며 더 바람직한 교육의 방향인지는 어떤 유형의 교사가 부적격한 지를 규정하기에 앞서 반드시 깊이 이야기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사진=픽사배이)

그래야 담임교사로서, 또는 남들과 다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교사들이 자신의 전문성과 교육적 관심으로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과정을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엉뚱하게 부적격 교사의 부당한 행위로 오해 받아 퇴출되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우리가 구체화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들은 학생을 얼마만큼 사랑해야 할까요? 사랑에 양적인 관점에서 ‘얼마’라는 용어를 쓴다는 것은 얼핏 부적절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사가 가진 사랑의 정도를 따져야 하는 것은, 열혈교사가 학생들을 뜨겁게 사랑하며 학생들의 구체적 일상에 깊이 개입하는 것에서부터, 학생들과 건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다소 냉정하면서도 깔끔한 방식으로 교육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 큰 학생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그 사랑의 양태는 크게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생님들이 완전히 학생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해 냉담하고 학생에게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과연 그것이 학생을 사랑하지 않아서인지, 교사의 교육 활동에 대한 충분한 보호와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면서 학생들 스스로의 행동 영역을 존중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우리는 엄격하게 따져보아야 할 일입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적격의 교사인지 그렇지 못한지는 우리가 쉽게 단정짓기 힘든 문제일 것 같습니다.

교육에 있어 교사의 사명감이 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또 교사의 역할관에 대해 굉장히 많은 논의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교사의 성직관, 전문직관, 노동직관, 공직관 등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부분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것 하나를 앞세우는지에 따라 교사가 수행하는 업무의 영역과 행동상이 크게 달라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장 앞세움으로써 교사의 부적격한 역할을 제재할 수 있을까요? 4가지 역할관의 기계적 평형이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역시 잘라 말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과업을 통해 자기 사명을 달성하는 것과 양심과 사상으로서 개인의 내밀한 부분에 머무를 수 있는 사명감의 영역이 완전히 조화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는 한 번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사들의 온정주의 때문에 부적격한 교사를 걸러내기가 참 힘들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물론 세상 어느 사람들처럼, 중세의 길드에서 수많은 노동조합과 이익단체들에 이르기까지 자기 직역의 이익과 동료들을 지키기 위한 온정을 베푸는 사람들은 인간의 역사에 끊이지 않고 존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교사의 자격을 논하고 그를 토대로 부적격함을 걸러낸다는 것은 교사의 온정주의를 논하기 이전에 굉장히 복잡하고 쉽지 않은 영역인 것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교사들이 서로 편들기 때문에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적절하게 교원평가의 방법을 알려주고 교사들을 걸러낼 수 있는 힘을 줘야한다고 과격하게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현실과 교육철학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문제에서 서로 각자의 이익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사들을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는 것이 과연 안전하게 공교육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일까요? 학원이나 과외와 같이 사교육의 한정된 모델처럼 학교가 완전히 역할을 수렴시켰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 같습니다.

교육은 교사들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사들에게 충분히 교육을 맡겨왔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사들에게 교육을 맡김에 앞서, 우리가 복잡한 층위의 교육 문제를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그르친 일들이 많지 않을까 되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의 계절, 인기를 끌기 위한 포퓰리즘으로 과격한 행동과 언어로 교사들을 난타하며 교육 문제에서 나타나는 불만을 무마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상투적인 표현을 좋아하진 않지만, 교육은 한 나라와 공동체에 있어 백년의 대계입니다. 철학의 빈곤과 현실 진단의 부정확함에서 오는 과격한 인기 영합주의가 과연 교사의 자격을 엄밀하게 사유해내어 공교육의 혁명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인지 저는 회의적일 뿐입니다. 

박석희 경기 마산초 교사 
박석희 경기 마산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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